22 Jul
22Jul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질문을 하나 하려고 한다.


‘여러분은 외롭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 있나요?’


대부분의 사람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살아간다. 외로움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이 외로움이다. 기숙사 생활을 한다면 기숙사 생활에서 집이 그리워질 때나 진짜 내 편인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런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다. 목사님이라면 예배시간에 고개를 숙이고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감정을 느꼈을수도 있다. 물론 인간은 외로움을 느낀다. 어쩌면 이런 감정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그것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

 
외로움은 오늘날 “인간의 새 질병”이라고 불릴 만큼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 중 하나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외로움은 사람들이 제일 흔하게 털어놓는 불만이며 자살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들 수 없게 나를 마음껏 꾸며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결국에 그런 나를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더 깊은 공허함과 실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자기도 모르게 생긴 경계심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해 서로에게 진심이 될 수 없어서 더 깊은 외로움 속으로 빠져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의 뿌리는 매우 깊기 때문에 사랑 어떤 모임이나 파티로는 그것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뭐, 때때로 겪는 사소한 거절들이나 차가운 침묵에는 아무런 악의를 느끼지 않으며 아무런 타격감이 없다면 당신은 신경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지 못한다. 만약 그런 것에 대해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아마 지금까지 당해온 경험으로 지긋지긋한 아픔을 끝내고자 자신에게 친 방어벽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고통받고 아파하는데도 회복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에 대해 존 레던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고통을 느껴라.”라고 말이다. 하지만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즐긴다. 내가 지금 챕터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라 라는 것이기에 이것을 추천하지만 만약 혼자 있는 시간이 평소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들었던 것으로 인해 또 다른 관계를 꺼리는 이유에서라면 그것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 만약 이런 이유에서 라면 홀로 있음은 별로 의미가 없다. 진정한 홀로 있음은 외로움을 끌어안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단지 피한다고 홀로 있음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직면하고 느끼며 끌어안기로 했을 때 그제야 우리는 홀로 있는 훈련이 시작이 된 것이다.

 
우리가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상대방으로부터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지쳐 상대방에게 의지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서로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며 서로를 옭아매고 있을 뿐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외로움을 끌어안으라는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나의 외로움의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고, 서로 같은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우리라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품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그렇게 하게 된다면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서로를 비난하게 될 뿐이다. 이처럼 이런 갈등의 뿌리는 다른 이의 외로움을 해결해주려는 그릇된 주장에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인간관계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고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 친구와 내가 가지고 있는 비밀이 우리 사이의 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상대방의 뒷담 화등 그런 것들이 이 비밀에 속한다면 그것을 빨리 밝히고 친구와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맞겠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비밀은 우리 내면의 성소의 비밀을 말한다.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하며 비밀이 없어야 한다는 잘못된 형태의 솔직함이 있다. 이 솔직함은 매우 위험할 수 있으며 이것은 강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 내면의 성소안 비밀을 위험하게 내비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닫을 능력이 없을 때 그 문을 여는 것 또한 의미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외로움이 아닌 고독이 필요한데, 고독은 격리된 곳에서 혼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채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음은 틀림없다. 그런데 정말 외로워서 미칠 것 같을 때, 잠시라도 그것을 달래줄 수 있는 품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라도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질문은 정말 상처가 많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다. 너무 아파서 피하고 싶더라도 우리는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잠시의 편안함을 위한 선택이라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때문에 우리는 당장의 편안함을 위함보다는 지속되는 편안함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고독이다. 마음의 고독이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음을 의미하기보다는 그것에 좌우되지 않는 내적인 행동들을 말한다. 때문에 우리는 마음의 고독이 있을 때 떨어져 있고 혼자 있어도 그것을 견딜 수 있고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주위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불안한 사람과 평안한 사람, 쫓기며 사는 사람과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 등 여러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의 고독을 가지고 살 때 다른 사람들의 행동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나 외로움에 쫓겨 살 때에는 지금 자신의 외로움을 즉각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사건만을 쫓아서 산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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