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the salt and light
of the world.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드리미스쿨에 재학 중인 1기생 최예솔 이라고 합니다.

앞서 도메인에 있는 You are the light and the salt of the world 라는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16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세상에 꼭 필요한 빛과 소금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제가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항상 명심해야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해 도메인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창의활동이라고 하는 스스로 수업을 만들고 그 수업을 주최하는 활동들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여러분도 이 블로그를 참고해 여러분만의 '창의활동' 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이 블로그를 보시면서 의미 있고 도전 받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bout me image
summary image
This summary is the derection of my class. Before I start talking about the summary, Let me explain why I make this class. Many people could speak Egnlish but in many korean people could study and write but can't speak in English. But we learn the English to communicate with other people. So through this class, I wanted to improve my English skills.
As I introduced earlier, The summary is a short introduce of my class. In this class I repeat after the speech and record how I grown. Let's start
 
01

Liptril

This is the step one to stretching our mouth. So before start, speaking the english Bible for 5 minutes.

02

Script

Decide on a script to read

03

Speaking

Listening the script and repeat after over and over and again.

04

Free talking

Free talking ten minutes before the end of class.

05

Prepare the presentaion

Prepare the presentation for parents to share what I did.

개요 image
이 창의활동은 DIB라고 하는 활동으로 Dreamy In Books 라는 의미로 우리가 책 안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다 알지도 못한체, 자신을 다 알기도 전에 다른사람을 판단하고 또 그 사람과 다툽니다. 그래서 어떨때에는 다른사람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들기도 하죠.
때문에 저는 누구보다 저를 먼저 알기 위해, 저를 알고난다면 마음으로, 지식으로 다른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수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이 창의활동을 통해 저의 신앙, 내면성장을 위해 이 창의활동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창의활동의 practice로는 책 읽기를 통해 여러가지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한 활동들을 보러 가시죠!!
  •  2020. 7. 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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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6.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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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5.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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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항상 가졌던 질문이었다. 모태신앙이었던 나에겐 하나님은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지는 존재가 되어 버려서 이것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다, 계시지 않다 하는 것은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나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모세의 홍수와 같은 것들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지만 이것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결정하기는 어럽다. 때문에 이것은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의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이걸 세계관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시다 안 계시다,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각자가 선택한 신념인 것이다. 거기에서 이제 하나님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좋은 건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이 더 의미 있는가 하는 것은 각자가 선택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하나님 계시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계시지 않다는 것 또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내가 어릴 때 그리고 지금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고 있다. 때문에 나는 만약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더라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그저 전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거부할 수도 없는 하나님을.
이 질문은 내가 기도에 대해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을 때 들었던 질문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기도의 주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모두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는 주문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나뿐만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해를 하고 있어서 변질된 신앙으로 변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한국교회에서 말이다. 그러나 20세기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는 자신의 저서인 고통의 문제, 개인기도 등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기도의 목적은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맞춰지는 것에 있다.”라고 말이다. 어떤 일에 대한 결과가 바뀌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가 대화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요술이 아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나님과 대화하기 챕터에서 다루고 있으니 참고 바란다.
알빈 플란팅가라는 사람이 이런 질문에 대해 주유 의지 논증으로 이 질문을 반박해 낸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의 개입 성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관여하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관여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주셔서 우리가 그것을 수행하는 존재로만 산다면 우리는 고통받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자유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선이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개입을 낮추면서까지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전쟁과 핍박들을 허용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의 보장을 원했다. 인간이 자신에게 복종하는 로봇이 아닌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너무나 오래된 일이기 때문에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리고 신학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증거를 남겨놓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목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복음서 중에서 특히 요한복음은 의도적으로 기적을 표적이라고 표현했다. 기적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각각의 기적이 예수님 자신의 사역과 정체성에 대한 비유였다. 오히려 예수님은 기적은 비유라고 하는 것이 아닌 기존 자체가 주는 행복이나 만족감은 통해 자신을 받으려는 행동에 대해 비판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니라.(요 6:26). 예수님께서는 기적의 증거를 땅에 기적의 증거를 남겨주고 싶지 않으셨다면 그 기적에 집중하지 않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렇게 많은 고민들을 하실 것으로 아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증거도 남겨 놓으신 것은 요한복음 20장 29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하는 말씀에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선명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거들을 남겨좋으실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했다면 누구든지 믿어야만 했을 것이다. 눈에 증거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저 보았기 때문에 고백하는 믿음이 아닌 보지 않고도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그런 깊은 신앙을 원하셨기 때문에 증거들을 남겨좋지 않으신 건 아닐까 하고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고민이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가지고 구원의 확신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죄를 짓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며 드는 의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한번에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존재적 죄인이다. 그런 우리의 존재는 죄인에서 구원받은 자로 그 존재가 바뀌었지만 죄인이었을 때의 습관이 남아있다. 바로 죄의 습관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계속 관계맺을 때 그 죄들이 불편하게 다가오고 고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에 되지는 않을 것이다. 천천히 서서히 바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재촉하지 말며 당신과 함께하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것을 천천히 바꿔가려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진리를 분명히 알고 믿을 때 확신이 생기고 그것이 섬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진리가 왜 진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며 기독교를 향해 쏟아지는 손가락질과 비판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무시해버린다. '기독교 비판 바로잡기' 라는 활동은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손가락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기독교는 뭐라고 말하고 있는 지에 대해 공부하는 활동이다. 종교, 사상, 사회적인 방향에서 기독교를 새롭게 보는 활동을 통해 기독교를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보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창조 타락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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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그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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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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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은 ‘삶에 대한 관점’, “신앙 고백적 비전” 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이를 ‘이데올로기’ 라고 부를것입니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서 세계관은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에 저는 세계관을 '한 사람이 사물들에 대해 가지는 근본적 신념들의 포괄적인 틀을 말한다' 고 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떠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세계관은 달라집니다. 때문에 세계관은 신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세계관, 신념은 실제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할때 쉽게 들어납니다. 낙태, 사형, 자녀교육을 위한 체벌, 공산주의, 성관계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라는 질문으로 쉽게 알 수 있죠. 심지어 우리에게 진화론, 창조론을 말할때에도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결정을 우리의 신념 즉, 세계관을 기준으로 선택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세계관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하나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성인으로서의 삶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의 그런 신념과 물질들을 해석하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얻게된 시각으로 기독교 세계관으로 부릅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했던 낙태, 사형, 자녀교육을 위한 체벌, 공산주의, 성관계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라는 질문에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네.
많은 이단들이 주장하는 내용들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자연들이 스스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그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신은 자신의 창조물에 참여하지 않는 부도덕한 존재로 만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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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교 세계관
세계관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때문에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느끼는 것들에 대한 정의가 바로 세계관에 기반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결정짓는 부분들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독교세계관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 자연세상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선한 창조임을 전재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세계관을 트게 창조, 타락, 구속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럼 먼저 창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창조
창조는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시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막 10:13-16)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어린아이의 존재는 순수함, 그저 자식이 없는 존재로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이 말씀은 '어린아이의 수용적인 자세, 절대 의존 상태' 를 두고 어린아이 같으라고 말하고 있다. 즉, 어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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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완전하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하나님의 존재도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겠죠. 우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가 모여서 만든 공동체 또한 완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가 다른 점은 우리는 공동체에서 각자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공동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공동체는 이런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완전하다는 개념과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독교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높은 도덕적 수준을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린 도덕을 행하는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기반한 울법은 도덕과는 다릅니다. 복음에 기반한 율법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만 도덕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덕이 아닌 하나님의 율법을 실행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도덕이라는 것은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한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판단할 때 죄를 짓습니다. 창세기에 언급된 죄의 기원은 ‘아는 것’이 아닌 ‘선과 악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서적으로 선이란 하나님의 뜻이며 그것이 전부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도덕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 잣대로 사람들을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이런 인간이 근본적으로 죄인이 되는 것은 도덕을 만들어 낼때이고, 선을 규정할 때며, 심지어 선을 행할 때이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천국의 비유, 탕자의 비유, 달란트 비유, 11시에 온 일꾼들의 비유,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등입니다. 이 비유들은 모두 도덕에 대한 공격입니다. 비유에서 모범으로 제시되었던 사람은 도덕적 행위를 하지 않았던 자들이며 오히려 버림받는 자들은 도덕적인 행위를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도덕적인 행위를 했던 사람은 자신이 선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도덕을 행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했던 그들은 꾸짖으셨습니다.
도덕은 우리가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고 이런 우리가 죄인이 되는 것은 도덕을 만들어 낼 때이고 선을 규정할 때 이며 심지어 선을 행할 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산다면 도덕은 당연히 행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도덕의 완성이 아닌 것을 우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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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언어가 나의 한계를 규정한다." 라는 말이 있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종류, 언어의 깊이가 내가 어떤 사람과 소통할 수 있으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를 제한하기 때문에 나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또한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서 중국의 문화와 함께 그 나라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중국어를 공부하고자 한다. 또한 언어를 재미있게 배우기 위해 중국어로 하는 노래를 통해서 중국어 공부를 할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본적인 문법 같은 것들을 배우고 동시에 중국어 성경을 암송할 예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가 배운 것들을 기반으로 ppt와 녹음파일을 만들어서 전시할 예정이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중국어를 재미있게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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